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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스펜스에 대한 봅시다
    카테고리 없음 2020. 2. 3. 05:58

    미드소마는 확실히 친근한 영화가 아니다. 이전 작품이며, 앨리 에스터의 데뷔작인 <유전>보다 더 기묘한 분위기를 형성해 관객의 호불호는 극명하게 갈리고, 해괴한 장면과 고어적인 요소에 따라 평단에서도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미드소마>는 단편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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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공포영화와 함께 미드소마는 서로 다른 두 세계와의 접촉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크리스티앙으로 대표되는 문명의 세계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겪는 현대사회에서 다양한 환경이나 사건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한다. 한편 스웨덴 북부의 작은 마을 세계는 공동체 사회로 모든 구성원이 뜻을 같이하고 있다. 각각 밤과 낮으로 표현되는 두 세계는 그래서 양립할 수 없다. 미드소마는 펠레를 매개로 한 두 세계를 통해 서스펜스의 본질을 서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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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스펜스의 대가 알프레드 히치콕은 어느 과인, 예쁜 하나가 생길 것으로 기대하지만 그 귀추가 물고기인 것을 막기 위해 개입하지 못할 때 관객들은 서스펜스를 경험할 것이라고 줄거리했다. 저런 그의 설명은 히치콕의 대화에서 제시한 테이블 밑 폭탄으로 구체화된다. 테이블에 앉아 두 사람이 이 내용을 과다하게 눕는 장면을 가족 단위로 보자. 카메라가 테이블 밑에 설치된 폭탄을 조명하면 관객들은 폭탄이 언제 터질지 긴장하고, 이때 서스펜스가 발발할 겁니다. 그라과인 폭탄을 조명하지 않은 채 폭발이 하나아과인 면 서스펜스가 아닌 서프라이즈가 발생합니다. 정리하자면 서스펜스의 가장 큰 특성은 관객이 문제 발생을 예견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를 바꿔 스토리하면 어느 것 하나 다른지 아는 sound에도 관객은 스릴감 노화는 공포를 느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서스펜스 안에서 우리는 어떤 식으로 공포를 느낄까. <미드소마>는 이 질문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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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드소마>는 전술한 히치콕이 제시한 서스펜스의 정의를 충실히 한다. 대표적인 예로 절벽 장면을 살펴보자. 비록 충격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행사일지라도 관객은 충분히 어떤 문제가 벌어질지 예측할 수 있다. 감독은 펠레의 대사와 행동을 빌려 벼랑 이벤트의 의미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카메라로 망치까지 담아 그 재주를 구체화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카메라는 절벽의 맨 밑에서 두 노인을 "익스트림으로 앵글 샷(extremelowangleshot)"에서 다음 두 노인은 절벽 끝에서 뜸을 뜨기도 합니다. (이것은 단지 관객만의 정세가 아니다. 영화 속 인물들도 이 세계를 관찰하는 정세이고 벽화도 나쁘지 않아 그림을 통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있다. 이는 관객이 서스펜스의 본질에 대해 더욱 객관적인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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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어떤 1이 1어 나설 것인가'를 해결한 인물은 이제'왜 그런 사건이 발생했을까'라는 질문에 넘어간다. 끊임없이 벌어지는 기이한 귀추 속에서 주인공들은 펠레에게 왜라는 질문은 수시로 던지지만 촌락의 풍습이라는 대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사실 두 세계는 양립할 수 없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여기서 1번째 공포가 발생한다. 일례로 '절벽' 핵사는 크리스티안 세계의 관점에서 볼 때 이해하기 어렵고, 자연의 순환이라는 관점을 더하더라도 체면을 구기는 행위는 비인류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둘째 공포는 결핍에서 시작해 대니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표현된다. 대니는 절벽 행사를 통해 자신이 가진 결여(가족의 죽음)를 마주하면서 더 큰 두려움을 느낀다. 그런 그의 공포는 같은 공동체 사람들에 의해 증폭된다. 크리스티안은 그녀의 상처에 공감하지 못했고, 마크는 그를 비하하고 있었다 이는 현대 사회가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공포를 코살 림 사리도 하지만 공동체 내부의 공포라는 점에서, 첫번째 공포의 형태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띤다고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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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 같이 <미드소마>는 서스펜스를 사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본질에 대해 깊게 파고든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미지의 공포와 결여의 공포를 동시에 겪는 대니가 미지의 세계와의 화합을 통해 결함을 극복한다는 점인데, 여기서 미드소마는 전혀 다른 주제의식을 갖게 된다. 나쁘지 않고 나쁘지 않다는 상처를 극복한다는 점에서 미드소마는 대니의 성장영화라고 할 수 있다. 홀거마을은 핵소가족 구분 없이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멤버로 함께 있을 뿐 아니라 (물리적 공유) 같은 목소리와 행동으로 희로애기락을 함께하기도 하는(심리적 공유) 철저한 연결된 사회였다. 이는 소의 가족 구성원과 공감이라는 대니의 결여에 대한 치유와 성장으로 이어진다. 점차 홀이 촌락에 동화돼 안정돼 가는 대니의 상황은 나쁘지 않고, 나쁘지 않다의 손과 발에서 풀이 나고 나쁘지 않다는 환영으로 대변되기 시작해 배우지 않은 스웨덴어로 소통하는 모습으로 구체화한다. 난항을 겪던 커플의 애절한 이별을 그린다는 점에서 <미드소마>는 로맨스 영화로도 볼 수 있다. 실제로 카메라는 꾸준히 대니와 크리스티안이 서로 느끼는 심리 변화를 조명한다. 대니가 바랬던 건 그냥 공감이었는데 그것은 크리스티안에게 단지 부다 소리뿐이었다 결국 크리스티안이 떠난다는 두려움에 배신감을 느낀 대니는 이별을 택한다. 크리스티안을 미드소마의 제물로 삼고, 지방의 금속 스토리였다. 트라우마가 있는 여성과 우유부단한 남성의 슬픈 이별 이야기.(실제로 알리 에스타는 이 영화를 공포영화가 아닌 로맨스 영화라고 스토리하기도 하고, 나쁘지 않게 경험한 이별에서 영감을 얻었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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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처럼 <미드소마>의 주제가 변주되면서 결국 이미 발생했던 기묘한 문재는 이해할 필요가 없게 된다. 다시 이야기해서 이미 등장한 룬 문자나 비윤리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풍습은 오직 서스펜스를 유도하기 위한 맥거핀이다. 이를 통해 관객들은 자발적인 추리를 유도해 서스펜스를 형성하고 결론적으로 대니의 심리를 조명하게 된다. 그래서 이 영화는 주제면에서도 내용면에서도 알프레드 히치콕과 맥을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미드소마는 고전적인 서스펜스를 고수했지만 오히려 새롭고 신선한 충격을 주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


    사실 히치콕의 서스펜스를 철저히 따르는 연출은 <유전>에서도 볼 수 있지만 이는 앨리 에스터가 가진 히치콕에 대한 향수 때문이 아닐까 싶다. 혹시 써프라이즈가 더 만연한 현대 공포 영화 산업에 대한 1침 1지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알리에스테르의 향후 행보는 가히 기대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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